
| 쪽수. 본문 내용 | 내 생각 |
| 21. 르네상스는 예술가가 자연의 관찰자가 되었다X 예술품이 하나의 자연탐구가 되었다.O |
자연주의는 결코 르네상스만의 소산이 아니다. 자유주의적 르네상스관, 관능주의적 르네상스관 모두 당대의 정치적 해석이었다. |
| 28. 중세에는 기독교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개별 민족의 특성에 비해 훨씬 중요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개체의 의미는 거의 논의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세 말기에 들어서면서는 … 지역마다 상이한 온갖 언어들이 등장했다. 르네상스는 그때까지의 단일한 유럽 문화에서 분리되어 이탈리아 국민정신이 부각되는 하나의 특수한 형태라는 양상을 띠는 것이다. |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국민성이 부각되는 양상으로 시작되었다. 이탈리아는 그런 양상이 드러나기 좋은 환경이었다. |
| 29. 콰드로첸토 예술의 이상양식(ideal style) 예술관의 본질이 통일성의 원칙과 전체 효과에서 나오는 힘에 있다. 중세 말기의 예술작품에 비할 때 르네상스 예술작품은 언제나 하나의 판에서 나온 것 같은 혼연일체감이 있다. 어떤 일관된 통일성이 작품에 흐르고 있고, 아무리 내용이 풍부할지라도 그 표현은 근본적으로 단일하고 동질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
르네상스 형식원리로서 통일성, 고딕과 상반되는 특징이다. |
| 30. 고딕 예술의 기본 형식은 누가(addition)의 형식이다. 하나의 관점에 의해 지배되는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한폭의 그림이 묘사하고자 하는 현실을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야가 마치 파노라마를 구경하듯 그림의 여러 단계를 거쳐가야만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옮겨가도록 만든다. |
“공간 개념”과 예술관이 변화한 것이다. 고딕이 오히려 동시대 미술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점은 관람객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가 들리기 때문이다. 정해진 답이 없다. 공간이란 여러 요소가 합쳐진 것이고 이 요소들은 다시 분해될 수 있다고 보았던 중세의 공간 개념이 반영되었다. |
| 쪽수. 본문 내용 | 내 생각 |
| 45. 처음부터 매우 제한되어 있던 민주주의는 메디치가 지배하에서는 그 내용이 더욱더 엉성하고 빈약해져서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이제 기본법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도 변동되는 일이 없이 오히려 악용되었으며, 투표함은 조작되고 관리들을 매수되거나 공갈.협박을 받아서 길드 쁘리오르들은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꼭두각시 신세를 면치 못했다. 여기서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문벌사회의 우두머리가 지배하는 일종의 비공식적인 독재에 지나지 않았고, 이 가문의 우두머리는 겉으로는 단지 한 사람의 시민을 자처했으나 실제로는 비개인적.형식적 공화국이라는 가짜 간판 뒤에 본래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 메디치 가문의 예술 후원, 예술적 안목에 대해서만 생각해왔지 이 가문이 피렌체에 미친 그림자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권력이 독점되고 그로 인해 번성하는 문화, 허울 좋은 껍데기에 늘어나는 세금과 기업 이탈, 몰락한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메디치와 피렌체의 역사를 다시 살펴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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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메디치가는 그들의 통치를 위해 과중한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국민의 경제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많은 기업가들은 피렌체를 떠나 다른 도시로 사업을 옮겨야만 했다… 부가 몇사람의 손에 집중됨으로써 15세기 초반에 광범한 계층을 포괄해가던 민간의 예술구매층은 점차 엷어지고, 예술품을 주문하는 사람은 이제 주로 메디치가와 그밖의 몇몇 가문에 한정되었다. 이런 현상의 결과 예술품 생산은 더욱 배타적인 성격과 까다로운 취향을 갖게 되었다. | 메디치가가 이룬 문화적 번성과 메디치가로 인해 고여가는 피렌체의 문화가 보여주는 모순
한화, 아트워싱 수집가의 등장이 중세와 르네상스의 큰 구별점! 좋은 후원이 있는가? 우첼로를 현대작가들이 재밌어하고 변주하고 있음. |
| <콰드로첸토의 시민적 자연주의와 양식의 혼합> 78. 자연주의와 인습, 합리주의와 낭만주의의 이러한 혼합은 기를란다요의 부르주아적인 점잖음과 데시데리오 다세띠냐노의 귀족적 섬세함, 베로끼오의 건강한 현실감각과 삐에로 디꼬시모의 시적 몽환성, 빼셀리노의 쾌활하고도 참신한 매력과 보띠첼리의 여성적 우수를 동시에 낳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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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드의 예술활동> 80. 길드 자체가 건축주는 아니지만 그들에게 맡겨진 사업을 기획, 감독하기 위해 조합원 자체로 건축위원회를 만들었다. 사업 종류에 따라 4~12명의 오삐라이(operai)라고 불리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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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가 청동문 입찰을 위해 경쟁한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길드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되니 재미있다! |
| 82. 조반니 루첼라이(Giovanni Rucellai) “나는 50여년 동안 돈을 벌고 쓰는 데에만 몰두해왔다. 이제 와서 내게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나에게 더 큰 만족과 희열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작품을 헌납하거나 저택을 짓는 데 관심을 가지는 개인 후원자들의 등장. 예술 애호가들이 헌납자에서 수집가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가장 잘 추적할 수 있는 예는 메디치가이다. |
돈 쓰는 재미 이제야 알다니~ 수집가 가문의 등장이 두드러지게 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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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로렌초 메디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작품을 의뢰하지 않았는데(피렌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밀라노로 이주했다), 이것은 다빈치가 신플라톤주의에 전혀 관심이 없었음과 관련 있다. 신플라톤주의는 현실세계에 대한 순수한 관조적인 태도를 반영하며 ‘비속한’ 현실세계의 일에 관여하기를 거부하는 생활태도의 표현이다. 민주적 자유의 마지막 자취까지도 말살하고 일체의 정치적 참여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던 로렌초는 이 철학을 좋아했다. |
<제미나이> 1.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적 체계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계승하는 동시에, 피타고라스 학파,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스토아학파의 요소를 융합하여 구축된 고대 후기 일원론적 형이상학 시스템입니다. 3세기 플로티노스(Plotinus)에 의해 집대성되었습니다. ① 일자(The One, $To\ Hen$)의 존재론우주의 궁극적 근원이자 유일한 실재는 '일자(The One)'입니다. 일자는 절대적 초월성을 지니므로 어떠한 속성으로도 규정할 수 없으며, 인간의 유한한 언어와 이성적 사유를 초월해 있습니다. 따라서 일자에 대한 서술은 "무엇이 아니다"라는 방식의 부정신학(Apophatic Theology)적 접근을 취합니다.② 유출설(Emanation, Proodos)일자로부터 우주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은 창조주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가톨릭적 '무원인 창조'가 아니라, 일자의 완전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흘러넘치는 '유출(Emanation)'로 설명됩니다. 유출은 존재론적 위계(Hierarchy of Being)를 형성하며 하강합니다.
③ 영혼의 회귀(Return, Epistrophe)와 황홀경인간의 영혼은 물질(육체)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신'과 '일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삶의 목적은 감각적 욕망을 절제하는 정화(Catharsis)를 거쳐 이성적 사유를 초월하고, 궁극적으로 우주의 근원인 일자와 주객의 구분이 사라진 채 하나가 되는 신비적 합일, 즉 황홀경(Ecstasy)에 도달하는 것입니다.2. 르네상스기 피렌체 플라톤 아카데미와 예술적 수용15세기 피렌체에서 코시모 데 메디치와 로렌초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세워진 '플라톤 아카데미(Academia Platonica)'는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를 중심으로 신플라톤주의를 재해석하며 르네상스 인문학의 정점을 이루었습니다.① 기독교적 토착화와 미학적 전환피치노는 신플라톤주의의 '일자'를 기독교의 '신(God)'으로 동치 시키며 이교 철학을 기독교 교리 내로 포섭했습니다.특히 그는 "미(美)란 신성한 광휘의 반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술가들은 현실의 가시적인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행위를 통해 초월적인 신성의 세계를 지각할 수 있다는 형이상학적 정당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② 도상학적(Iconographical) 반영
3. 정치학적 맥락: 관조주의와 메디치 가문의 헤게모니질문자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로렌초 데 메디치 시기에 신플라톤주의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배경에는 고도의 정치적 역학 관계가 존재합니다.① 시민 인문주의(Civic Humanism)의 억압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장악하기 전, 피렌체의 주류 사상은 레오나르도 브루니 등으로 대표되는 '시민 인문주의'였습니다. 이는 키케로적 전통에 따라 지식인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Vita Activa, 능동적 삶)와 공화주의적 덕목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메디치 가문의 참주 정치(사실상의 독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상이었습니다. ②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의 이데올로기화로렌초 메디치는 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신플라톤주의를 장려함으로써 사유의 방향을 '사회적·정치적 실천'에서 '개인 내면의 영적 관조(Contemplation)'로 급격히 전환시켰습니다.
짚고 넘어갈 핵심 요약신플라톤주의는 사상사적으로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극단적 초월성과 위계적 유출설로 발전시킨 형이상학이며, 미학적으로는 르네상스 예술에 신성한 가치를 부여한 촉매제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사적으로는 시민들의 공화주의적 실천 이성을 잠재우고 지배 계급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 관조주의적 통치 이데올로기라는 다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현대 사회에서의 유행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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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cameo 까메오; 마노, 조개껍질 등에 부조로 장신한 작은 장신구 로렌초 수집품의 핵심은 5,000~6,000개로 추정되는 까메오와 보석류이다. 그의 일반적인 예술적 취향 즉 장식적인 것과 값비싼 것, 유희적인 것과 기예적인 것에 대한 취향 역시 소군주국 영주들의 로꼬꼬적 예술 취향과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 것이었다. |
cameo 어원 재밌다! cameo는 16세기 프랑스어 camaïeu(또는 중세 라틴어 cammae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는 ‘조각된 보석’ 또는 ‘양각 보석’의 의미였습니다.Wordpedia+1 이 단어는 이탈리아어 cammeo를 거쳐 영어로 정착되었고, 보석 세공에서 ‘작지만 눈에 띄는 인물 조각’이라는 이미지가 영화 용어로 확장된 것으로 설명됩니다. 메디치가 훌륭한 안목을 지니고 후원했고, 피렌체가 예술로 영화를 누린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나의 생각이 단편적이었다. |
| 94~95. 르네상스에서 여성들의 문화적 중요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르네상스의 합리주의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합리주의 정신은 여성을 남성과 정신적으로 같은 위치에 나란히 두지만 결코 남성들 위에 올려놓지는 않는다. 네피(Nepi) 궁정에 군림했던 루끄레찌아 보르자(Lucrezia Borgia)와 페라라와 만토바 궁정의 중심을 이루면서 주위의 시인들을 보호, 격려했을뿐더러 그 자신 뛰어난 조형예술의 이해자였던 것으로 보이는 이사벨라 데스테(Isabella d’Este) 같은 여성들은 예외에 지나지 않는다. |
이사벨라 데스테가 궁금해졌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86258&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
| <르네상스 문화의 엘리트층> 르네상스는 다른 계층을 완전히 배제하면서 문화를 독점하려고 했던 비민중적이고 라틴화된 교양 엘리트의 문화였다. 인문주의, 신플라톤주의의 정신조류와 관련된 계층, 즉 대체로 동일한 사고방식과 단일성을 지닌 지식인계층을 대상으로 중요한 예술품들이 만들어졌다. 중세의 교회가 라틴어가 공용어인 것은 로마 후기의 문명과 연속적, 유기적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인 것에 비해,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라틴어를 사용한 것은 중세문화의 민중적 전통을 단절시키고 일종의 새로운 문화적 독점을 확립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교회와 길드의 권위에서 해방되는 순간부터 인문주의자로 구성된 새로운 권위에 종속되며 그들을 예술의 심판자로 인정해야 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현대적 의미의 예술감상자층이 탄생한 것이다. |
| 쪽수. 본문 내용 | 내 생각 |
| 소시민적인 수공업자 → 자유로운 정신노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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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시장> 107. 초기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소시민 상공인들과 동렬에 서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기 작가의 엄청난 보수’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111. 예술가들의 사회적 신분 상승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보수에서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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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정말 배고픈 예술가였네… |
| 117. 르네상스적 인간이자 인문주의자로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가 정밀한 자연과학이며 화가는 수학적 지식과 시적 천재성을 모두 지닌 존재라고 생각했다. | 그 당시 화가가 수학을 예술과 학문의 근본으로 보았다면, 지금의 화가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
| <예술가의 전설> 118. 브루넬레스키: 예술가의 전기가 동시대인에 의해 쓰인 최초의 사례 기베르티: 미술가의 손으로 쓴 최초의 자서전 119. 우리는 이제 사람들의 관심이 미술작품에서 미술가 자신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창조적 개인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의식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서명, 자화상) 121. 친퀘첸토 초기부터 거장들은 더이상 패트런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귀족계급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예시: 라파엘로, 티치아노, 미켈란젤로) 123. 지금까지의 예술가가 개인적, 종교적 숭배를 위한 도구 노릇을 해왔다면 이제 예술가 자신이 직접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신의 축복도 그의 패트런과 보호자로부터 그 자신에게로 옮겨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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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의 천재 개념과 독창성에의 의지> 126. 예술이 더이상 객관적인 ‘무엇’이 아니라 주관적인 ‘어떻게’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예술=자기고백, 주관적 표현. 천재 개념의 발전: 기독교 문화의 붕괴→ 정신의 생산성+지적 소유권→ 그 자체로 의미와 목적을 가진 예술 130. 중세의 객관적 예술관(예술품은 대상적 가치만 지님) → 르네상스의 주관주의적 예술관(예술품에 인격적 가치 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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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천재 개념이 예술가의 입장에서 주관적 형식으로 표현된 생각이라면, 반대로 이를 작품의 입장에서 객관적 형식으로 표현하면 곧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이 된다. 르네상스에서 예술의 자율성이란 단지 교회와 교회가 대표하는 형이상학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할 뿐, 절대적 보편적인 자율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132. 사람들의 관심이 내용적인 요소에서 형식적인 요소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
르네상스는 내용→형식으로의 관심 이동이구나! |
| 135. 원근법 그 자체는 르네상스의 창안이 아니었다. 이미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도 생략법을 알고 있었고, 개개 사물의 크기를 관찰자와의 거리에 따라 축소했다. 그러나 고대에는 원근법에 의해 통일되고 단 하나의 시점에 고정된 공간상을 알지 못했을뿐더러 상이한 대상들 및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들을 연속적으로 표현할 줄 몰랐고 그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고대의 공간묘사는 서로 관련이 없는 부분들을 합쳐서 만든 구성체였고 통일적인 연속체가 아니었다. 파노프스키의 용어를 빌리면 그것은 ‘집합적 공간’이었지 ‘체계적 공간’은 아니었다. 르네상스에서 비로소 회화는 많은 사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란 일종의 무한한 연속적 동질적 요소이며 이런 사물들을 통일적으로, 즉 단하나의 고정된 눈으로 본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 원근법이 가장 정확한 시각적 재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
| 136. 르네상스 예술을 집약하는 공식은 3차원 공간의 2차원적 재현인데 사실상 이 공간상은 하나의 추상일 뿐이다. 투시도법의 공간은 수학적으로는 정확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공간과는 다르다. | “알베르티가 시각 피라미드의 평평한 횡단면이라고 정의한 공간상은 하나의 대담한 추상이다. 투시도법의 공간은 수학적으로는 정확한 공간이지만 심리학적 생리학적으로 실제와 같은 공간을 아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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