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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책화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권> 중세

미술교육

by 단짠쌤 2026. 7. 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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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마지막 화요일 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권 중에서 '중세' 파트 독서토론을 했습니다.

대학원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하행길 기차에서 줌 미팅을 참여해야 해서, 너무나 두꺼운 이 책을 들고다닐 수 없기에 인상깊었던 본문과 생각을 구글docs에 정리해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의 코멘트 중에 기억에 남는 내용을 함께 정리하기도 했답니다.

출처: icae_artedu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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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아르놀트 하우저 | 창비 - 예스24

인문교양 필독서로 사랑받은 우리 시대 고전!창비 50년을 독자와 함께한 스테디셀러!이제 500점에 달하는 컬러도판으로 새롭게 만난다!헝가리 태생으로 20세기를 빛낸 지성, 아르놀트 하우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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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초기 기독교 예술의 정신주의

쪽수. 본문 내용 생각
자연경제 바탕을 둔 봉건제도 시기
궁정기사 시대인 중세 전성기
도시 시민계급 문화가 중심이 된 말기

하지만 정신적 세계관은 동일하다. 종교적, 정신적 예술
영실쌤; 민족 대이동.

221. 모사보다는 그려야 할 신성한 대상의 정신을 화면에 떠오르게 하는 것이 문제였고, 따라서 세부 묘사 하나하나가 모두 기독교적 구원을 가르치는 교리의 암호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림에 교리를 담으려고 하다보니 평면적, 도상적이 되었다. 그들 나름 최고의 전달 발견을 찾은 것.) → 이 방식을 일상생활에 적용한다면? 픽토그램? 포스터? 이모티콘?)
→ 만화 같은데? 한 화면에 내용이 다 들어있어야 하는 만화. 
221. 작자의 유일한 관심은 이야기가 명료하고 줄거리 진행에 분명치 않은 점이 하나도 없는 것.

→ 불화랑 비교감상?
→ 아이들이 잘 아는 맥락의 한 장면을 중세식으로 표현한다면, 아이들이 그림만 보고서 서사의 내용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드라마 한 장면. ㅋㅋㅋ
225. 초기 기독교 예술은 밀라노칙령(313.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자유 허용)이후 국가, 궁정, 상류사회, 교양계층의 정통적인 예술이 된 후에
서툰 솜씨를 극복함. (예시: Santa Pudenziana apes 모자이크)

227. 낡은 표현 형식(그리스로마 스타일)이 그런 형식을 낳은 정신보다 오래 존속했다. 
모야 이 때는 내 머릿 속 중세의 모자이크가 아니네? 엄청 그리스로마 적인뎅





(정신은 기독교로 가고 있는데 표현형식은 아직 그리스로마였던 시기.)
칼로카가티아  
227. 교육 수단으로서의 예술
(그리스로마 시대에 미술작품은 미학적인 것이었는데, 기독교에서는 미학 외적인, 기독교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가 됨.)
단우쌤 디자인과 출신의 입장에서 미술은 브랜딩, 시각적 이미지 메이킹인데. 중세의 미술은 더욱 더 브랜딩이네? 
228. 예술형식의 변화 = 서로마제국 붕괴 = 5세기 = 초월적 표현양식
예술은 현실의 속박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현실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니, 마치 재현성을 버리는 현대미술로의 이행같다.
230. 모든 것이 딱딱하고 생기 없고 차가운 형태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렬하고 지극히 본질적인 생명에 가득 찬 것이 되었다.
갈라디아서 2:20, 그런즉 이제는 내가산 것이 ㅏ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
엄격하고 딱딱한 형태 속의 생명성이라..

 

02. 비잔띤제국의 황제교황주의 체제하의 예술양식

쪽수. 본문 내용 생각
황제교황주의, caesaropapism 콘스타티노폴리스의 정치 구조, 경제 순환(황제에게 귀속) 체제 등이 새롭다. 재밌다.
234. 여기서만큼 예술이 왕만을 위한 예술이고 전귀족을 위한 예술이 아니었던 예는 아마 없을 것이고, 또 예술이 이만큼 철저히 종교적 정치적 충성을 나타내는 형식으로 일관한 예도 없을 것이다.
(예시: 라벤나 산비탈레 성당 봉헌 모자이크, 547년경.)
세습 귀족도 없었대 ㅋㅋㅋ 나름 성과주의인데???
239. 바실리까에 돔을 붙인 비잔띤 건축은 이런 공간의 비민주성(공간이 격식, 가치에 따라 구분되어 있음)을 확장해 공간들 간의 격차를 강조한다.  훨씬 웅장해졌네! 바실리카에 돔을 붙이고 천고가 높아지면서.
240. 미니아뛰르 회화
(그다지 돈이 드는 예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 낮고 자유로운 예술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고객이 될 수 있었음) → 우상파괴 시대의 피난처가 되었다. (자유롭고 사실적인 형식도 나타남.)
 
 

03. 우상파괴운동의 원인과 결과

쪽수. 본문 내용 생각
243. 우상파괴운동(iconoclasm)
운동의 배경은 정치적인 것, 반예술적 경향은 사소한 경향 중의 하나일 뿐.
245. 우상숭배 금지가 상층 교양계층에 미치는 영향 → 황제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상층 교양계층이 성자상 우상수배를 싫어했음)
246. 커져가던 수도원 세력을 견제하고자 함 (수도원은 상층계급보다 민중과 결합이 강했음)
군대의 유지를 위해 우상숭배 금지가 나왔다는데?
248. (오히려 우상파괴운동이 예술활동 방향을 새로이 조정하며 제2 전성기(9~10세기)로도 이어짐.)
249. (보수적인 수도원만 살아남아서 ㅋㅋ 17세기까지도 성상 제작법이 11세기처럼 만들어짐.)
 
 

04. 민족대이동기에서 카롤링거 왕조의 문예부흥기까지

쪽수. 본문 내용 생각
(원시적 농경생활 아님 주의) 농경 생활을 하던 민족대이동 시기의 미술은 정교하게 기하학적. 숙련된 전문 작업공이 있었을 것.  
252. 게르만 문화의 기하학적 양식의 장식성은 아일랜드 미니아뛰르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한다.
253. 로마제국에 속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
그리스의 수도원은 도시 생활의 핵심 역할 수행, 아일랜드 수도사들은 반(half) 농민. 
 
254. 중세 초기 미니아뛰르와 동일한 시기의 고대 아일랜드 문학은 자연주의, 인상주의적 높은 수준.  문학 어구 가져와서 미술 형상 돌려깜 ㅋㅋ
256. 콜로나투스  
257. (예시: 프랑크 왕조의 메로빙거 왕조?)
게르만 족의 서구 정복, 프랑크 왕국의 신흥 봉건귀족: 세습x 동질한 인종x 관직, 재산, 하층계급 출신
봉건 사회로의 이행이 예술의 사장, 교회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지게 된다.

유경쌤: 굿즈의 시대. 영상이 시각의 민주화를 가져왔지만 소비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다르다. 소유하기 위해서 키치, 굿즈가 소비되는 것이 아닌가? 역사적 흐름 속에서 반복되는 일 같다.

소영쌤: 다른 데 돈을 조금도 안 쓰고 작품을 사는 것. 매달 작품을 사는 사람이 200명 넘게 주변에 있다는 소영쌤. 주어진 돈 안에서 어떻게 남들과 다른 것을 구입할까? 아비투스 적으로. 정보의 전투성으로 컬렉팅한다. 정보 싸움이 되었다. 

에바 알버스 작가의 굿즈가 한 달에 천 만원 넘게 팔린다. 굿즈는 소비하게 되지만 진품은 소유하게 된다. 소비에는 쉽게 돈을 쓴다. 소비하다가 소유할 것을 사지 않을까? 북유럽 작가들이 디자이너 가구, 미술 작품을 모두가 사는 것처럼. 굿즈 살 돈으로 작가 드로잉 사는게 나은 거 아닌가? “가치 있는” 소유는 소비보다 낫다.

미술 작품은 왜 티비와 다르게 ‘샀다가 잘못 될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트레바리> 손 들고 이야기함 ㅋㅋㅋ 
  
259. 6세기. 지배관계의 변화 = 사회생활이 도시에서 지방으로 이동.
국가의 토지 일정 기간→종신적→세습→토지+특전→대지주가 자기 영토 내에서 국가와 동등한 절대 권력 → 도시 인구 빠져나가고 황폐화됨
260. 왕들이 이따금 체류한 고을조차도 비교적 작고 인구도 적었다. 건축물, 기념비 등 도시, 궁정, 수도원 중 누구도 예술품 생산을 뒷받침해줄 힘이 없었다.
261. 교회 외에 학교는 점차 없어져서 관리의 임명과 교육이 교회에 맡겨지면서 교회가 서양사회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이 됨. 
262. 9세기. 카롤링거(Karolinger) 왕조, 프랑크 왕조
카를 대제(Karl der Grobe, Charlemagnue, 768~814)
메로빙거 왕조는 제정일치제의 카롤링거 왕조로 바뀌면서 프랑크 왕은 기독교 세계의 비호자 역할을 맡게 됨.
비호자?

오유경쌤: 카롤링거 대제는 사실 문맹이었다~? 라틴어가 이미 사어가 되었음. 라틴어를 현대어로 번역하는 것들. 
김정희 금석학 시도가 떠올랐다.

귀퉁이 작가를 발굴하려고 노력하는 소영쌤처럼 우리도 그런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265. 카를 대제가 만든 도시 아헨(Aachen)
문학아카데미, 궁정 부속 아뜰리에(공방), 일류 학자 모아둠 – 유럽 궁정의 모범
 
266. 카롤링거 왕조의 문예부흥운동
그리스로마문화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소유하려 노력하는 것이 특색인 ‘서양적 인간’,
그러나 기독교 예술이라는 색안경을 통해서만 고대문화에 접근함,
민족대이동 시대 미술의 장식 위주 평면적 양식을 극복하고 인간 신체의 3차원성, 입체성을 다시 표현

에보 복음서의 성 마태. 준학예사 시험 기출, 곰브리치에도 있던 것. 변두리에서 낸 것이 아니라 카롤링거 왕조가 정말 중요한 거였군.

 

06. 영웅가요의 작자와 청중

쪽수. 본문 내용 생각
276. 궁정 시인, 영국에서는 8세기 확고한 지위 가짐. 게르만족은 상류 군인이 겸했을 것.
방랑 시인의 등장(궁정에서 궁정, 귀족의 저택에서 저택으로 이동하면서 상류사회에 유흥을 제공하는 현상)
음유시인 아님(궁정의 애호를 받지 못하던 시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물음에서 수도사들이 수도원 명성을 퍼뜨리기 위해 유체, 유물이 보존되어 있는 성자나 영웅 이야기를 음유시인 예술로 퍼뜨렸을 것이다.
미무스
팔방미인 만능연예인
metre de plaisir 메트르 드 쁠레지르

미무스(Mimus)의 몰락과 생존: 고대 로마 시대의 '미무스'는 대중을 상대하던 광대이자 거리의 연기자(오늘날 마임의 어원)였습니다. 중세 초기 교회가 연극을 탄압하면서 이들은 갈 곳을 잃고 유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
음유시인의 탄생: 반면 왕실과 귀족의 총애를 받던 궁정 시인들 역시 정세 변화(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 등)로 인해 하층민 사회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1]
두 장르의 융합: 살아남기 위해 궁정 시인의 격조 높은 노래(시)와 거리 광대(미무스)의 재주·연기가 결합하면서, 유럽 전역을 떠돌며 시를 읊고 노래하던 중세의 '음유시인'이라는 독특한 예술가 계층이 완성되었습니다. [1]

 

07. 수도원에서의 미술품 생산의 조직화

쪽수. 본문 내용 생각
286. 카를대제 재위기간이 끝난 뒤 궁정은 이미 제국의 정신적 중심지가 아니었다. 학문, 미술, 문학 일체의 거점을 이제 수도원이었고, 당대의 정신적 소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도원 부속 도서관, 서실, 사본 제작소에서 진행되었다.  기독교적 서양 미술 꽃 피우게 되는 시발점
289. 수도원이 중세 예쑬사 및 문화사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도 수공예작업의 조직화를 통해서였다.   
292. 수도원 부속공장은 결코 물품 생산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한 시설이 아니요 공학기술연구소를 겸한 경우가 많았다.  
 

08. 봉건제도와 로마네스끄 양식

쪽수. 본문 내용 생각
297. 로마네스끄 예술은 수도원의 예술인 동시에 귀급계급의 예술
298. 산비탈에 마치 요새처럼 거대한 벽을 세운 수도원은 왕과 제후의 성과 저택만큼이나 일반 민중으로서는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특권층의 주거였다. 따라서 이들 수도원에서 만들어진 미술품이 세속 귀족계급의 정신과 일치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어쩌다가 번영했던 도시가 소멸하고 다시 농업화, 시골생활, 자급자족이 다시 정점을 찍게 되었는지 참 신기하다.
303. 시장을 갖지 않은 경제
298. 프랑크 왕국의 군인귀족과 관료귀족에서 출발하여 이미 9세기 말에는 완전히 봉건화되어 있던 귀족계급은 이 무렵에는 사회의 최점단에 서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299. 원래는 왕위가 세습, 이제는 귀급이 세습, 왕은 선출됨
301. 비교적 소수로 구성된 단 하나의 사회계층의 세계관, 사회이상과 경제이념에 문화의 모든 형태가 이만큼이나 결정적으로 좌우되던 시대는 서양역사에서 두번 다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304. 경제가 전통주의적, 비합리주의적인 데 상응하여 사회형태도 정체되어서 계층 간의 장벽이 견고했다. 신분 = 신의 뜻이라고 생각  
306. 교회의 절대주의적 문화정책이 완전히 실현된 것은 10세기 이후, 
끌뤼니 수도원에서 일어난 개혁운동으로. 묵시록적인 분위기, 만성적인 종교적 흥분상태에 가두며 종말과 심판에 대해 설교하고 순례와 십자군을 조직하며 황제나 왕을 파문하기도 했다.
로마네스끄 형식의 건축 건립시작
왕들이 일정한 거처가 없이 주교좌나 수도원에 머물며 생활했대 세상에~

308.로마네스끄에는 조그맣고 자그마한 “소도시”에 거대한 교회를 세움.
309. 로마네스끄 양식 시대의 미술은 비잔띤이나 카롤링거에 비하면 훨씬 단순, 동질적. 이미 궁정예쑬이 아니었음. 아랍인이 지중해로 침입하여 동서교역이 단절되며 서방 도시가 더욱 쇠퇴함.
 
310. 로마네스끄 예술의 종교적 성격은 궁정사회, 도시 당국, 국가의 중앙권력 등이 붕괴한 결과 실질적으로 교회가 에술품의 유일한 고객이 되었다는 사정의 결과일 뿐이다. 예쑬품은 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닌 ‘예배, 제물, 헌납의 연장’으로 간주됨.  
313. 11세기, 자급자족경제가 다시 교역경제에 자리를 내놓기 시작하며 이 미술형태에 변화가 나타남.  
322. 초기 기독교의 분묘예술에서 죽은 당사자는 전혀 나타나지 않든가 매우 조심스럽게 약간만 나타날 뿐인 데에 비해, 로마네스끄 시대의 묘비에 이르면 죽은 이가 주된 대상이 된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묘비에서 초상화가 나타나는 것 재밌다. 종교적으로 말세같은 그림 그리고, 도상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말이지.

 

09. 궁정적 기사적 낭만주의

쪽수. 본문 내용 생각
324. 고딕
생활의 중심을 또다시 지방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모든 새로운 것이 도시에서 발생하며, 모든 길이 도시로 통하게 된다. 이제까지의 여행자는 수도원 소재지를 중심으로 여행계획을 세운 반면, 이제부터는 또다시 도시가 사람들의 합류점, 접촉점이 되었다.
(중세 도시: 물품 교역 중심지, 고대 도시: 행정의 중심지)
(12세기 이후 수공업자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전문 상인층이 발생함.)
고딕, 시민계급의 출현, 현물급여 대신 현금급여, 자유시간, 시민 계급 출신 미술가와 장인의 미술품 생산
333. 고딕의 대성당 건축은 도시적, 시민적 예술.
(로마네스크: 수도원, 귀족의 예술)
(대성당 건축에서 비성직자 발언권이 커짐)
(교회가 성직자나 교회의 재력만으로 충당할 수 없는 것이 됨)
로마네스크 시대의 성전 건축에는 성직자가 주문자, 감독자?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었잖아.
333. 기사문화 전체가 봉건적, 위계질서적 생활감정과 새로운 시민적, 자유주의적 사고방식 간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문화의 세속화) 물품의 교환, 정신적 교류
기사들은 십자군 원정, 신자들은 순례 길, 상인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농민은 고향을 떠나고, 장인/예술가는 건축장인조합 돌아다니고, 교수/학생은 대학에서 대학으로, 방랑문인(Vagnten)은 방랑을 찬미하는 풍조
338. 기사계급은 12세기 말 13세기 초에 이르러 다른 집단과 엄격히 구별되는 폐쇄적인 계급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 일반의 신분 유동화 경향 중 하나였던 기사 계급 → 세습 신분이 됨. 오히려 신참자(novus homo)의 열등의식에 의해 ㅋㅋ 엄격성을 띄게 됨.
340. 즉, 자신의 출신에 대한 의식 때문에 한편으로 단순한 형식의 가치를 과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떤 종류의 덕목과 능력에서는 자기들이 구귀족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우월하다는 자각… 봉건적 군인 계층이 기독교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느님의 기사가 되어 버림
341. 기사계급의 모든 문화적 업적은 세속적 경향과 종교적 경향, 감각적 경향과 정신적 경향 사잉의 대립관계의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모순적인?
341. 기사적 칼로카가티아 개념
(미적 가치와 지적 가치가 동시에 도덕적,사회적 가치라고 생각하는 문화 개념)
(고귀한 정신을 지니고 지적,육체적으로 세련된 기사의 모습. 밤베르크 대성상의 기수상.)
종교적 교양과 세속적 교양 사이에 괴리 → 수도원 문학은 힘을 잃음
영실썜. <램피카> 신여성 대표하는 화가가 되는 연극. 여성의 존재가 중세에도 있었구나! 여성의 지위, 여성의 강인함
348. 연애가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 찬미의 대상이 됙 ㅗ사랑은 아끼고 가꾸어야 하는 것이라는 감정을 낳았다는 점에서 기사문학은 새로운 것이었다. .. 연애에 의한 남성의 유약화, 여성화도 새로운 현상이었다. 사랑을 구하는 편이 남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남녀 본래 관계의 역전을 의미했다. 노예 약탈과 부녀 납치가 다반사였던 고대와 영우시대에는 남자 쪽에서 구애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게 남자가 구애하게 되었다는 것. 여성이 후계자가 될 수 있었던 법적인 변화 등. 고딕시대에 여성 지위 향상이 있었군??
352. 중세 연애시(Minnesang)는 주군에 대한 봉사관계를 그 부인에게 옮겨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는 학설은 제후와 호족들은 전쟁에 몰두하여 종종 궁정이나 성을 장기간 비울 수 밖에 없었고 그의 부재지간에 부인이 군주의 권력을 행사했다는 사정을 생각할 때 더욱 설득력이 있다. 궁정에서 봉사하는 시인들이 주군의 부인을 찬양하는 노래
 

10. 고딕 예술의 이원성

쪽수. 본문 내용 생각
385.
중세 실재론(비민주적인 사회질서, 상층부만 중시되는 계급사회, 개인 자유가 없고 교회와 영주에게 의존, 절대주의적 초개인적인 사회의 철학) 
→ 고딕 유명론(권위주의적인 집단형태가 붕괴하고 무수한 개인차에 근거한 사회생활이 등장. 동적, 진보적, 자유주의적 세계관. 개별 사물이 존재의 일부임을 보증.)
철학의 변화가 나타남.
387. 그토록 많은 고딕 대성당이 미완성인 채로 남은 원인이 된 이 새로운 예술의욕, 실제로는 완성되었을 경우에도 본질적으로는 미완성이먀, 다시 말해서 무한하며 영원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그 내적 불완전함, 무한의 피안을 찾아가고자 하는 충동, 여하한 완성에도 안주하지 못하는 본성… 미완성의 미학임
393. 로마네스크 교회는 그 자체로 완결된, 그 이상 아무것도 구할 바 없는 안정된 공간상이다. 비교적 넓고 상징적이고 간소한 내부는 감상자의 눈을 끌어 그 안에 머물게 하고, 감상자에게 언제까지나 완전한 수동적 태도를 갖게 한다.
그에 비해 고딕 교회는 생성의 상태를 계속하면서, 말하자면 우리 눈앞에서 솟아나고 있다.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건축물은 미완성임으로 해서 그 효과가 손상되기는커녕 도리어 힘과 매력을 더하는 것이다. 
 
394. 미완성인 것, 거친 스케치풍의 것, 단편적인 것을 특히 좋아하는 근대의 성향도 그 연원은 여기에 있다… 고딕 이래의 모든 위대한 예술은 어딘가 단편적인 데가 있고, 내면적으로든 외면적으로든 완결되지 않고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마지막 한마디는 다하지 않은 채 멈춰버린 면이 있다. 감상자 혹은 독자가 항상 무언가를 더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고딕 건물은 자체 내에 움직임을 담고 있는 작품일 뿐 아니라 감상자까지 동원해 예술 감상이라는 행위를 일정한 방향과 단계적인 발전이 따르는 하나의 과정으로 바꿔놓는다…. 
미완성이 고딕부터 이어져오는, 감상자가 한끗 더해야하는 일이 됨

한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감상자에게 끊임없이 위치를 바꿀 것을 강요하고, “운동/행동/재구성이라는 형태로서만 그 전체의 모습을 마음 속에 떠올릴 수 있게 한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5311635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 | 남종국 | 서해문집 - 예스24

흑사병, 십자군전쟁, 마녀사냥…오해와 편견 뒤 감춰진, 우아하면서도 울퉁불퉁한 이야기!이화여대 사학과 남종국 교수가 강의실 밖으로 꺼낸 ‘경이로운 중세’ 역사학자의 시선이 에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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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시각적 재현에 주된 목적이 없었다는 점에서부터 전체의 모습을 보려면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오히려 중세가 현대 미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영쌤이 추천해 준 이 책 너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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